언론보도
[연합뉴스] 철종의 결혼식 그림에는 철종이 없다
- 작성일2017/06/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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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이사장님의 사모님이신 이성미 교수님의 저서 소개 기사입니다 ♡
<철종의 결혼식 그림에는 철종이 없다>
[연합뉴스 2008-06-19 19:13]
철종의 결혼 의궤철종의 결혼 의궤 (서울=연합뉴스) 1851년 철종의 결혼식 장면을 담은 철종 가례도감의궤 중 왕(왼쪽)과 왕비(오른쪽)의 가마행렬. 왕의 어가에 왕은 보이지 않고 의자만 그렸다. 왕은 지엄한 존재라 해서 그릴 수 없었다. << 문화부 기사참조 >>
이성미 교수 '가례도감의궤' 연구 집대성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 인조의 아들 소현(昭顯)은 인조 3년(1625) 세자에
책봉되고 열다섯살이 된 2년 뒤에 강씨와 결혼했다.
그의 결혼식이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비교적 생생한 자료로 만날 수 있는데 이 때의 결혼식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그림으로 기록한 의궤(儀軌)라는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왕실 혼례 장면을 담은 의궤를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라고 한다.
한데 결혼식은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신부의 간택에서 시작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과정은 중요한 순간순간을 포착해 시간 순서대로 나열할 수밖에 없다.
소현세자 가례도감의궤는 현존 가례도감 중에서도 연대가 가장 오래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자못 크다.
이런 의궤의 흐름을 정리하다 보면 조금은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즉, 후대로 내려올 수록 의궤
또한 규모가 장대해 진다는 점이다. 소현세자 결혼식 '사진'은 그래서 8장에 지나지 않는다.
검소함을 몸소 실천한 이로 유명한 영조. 그는 "요즘 사치풍조가 날로 성행하니 마땅히 왕공(王公)이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과 함께 훗날 정조가 되는 왕세손 이산의 혼례를 검소하게
치르라고 명령했다.
그의 결혼식 장면 또한 의궤로 남아있는데 그것을 분석했더니 그의 결혼식 행렬에는 총인원 394명에
92필의 말이 동원되었다.
그러던 것이 철종 시대가 되면서 장대한 행렬로 발전한다. 1851년에 작성된 그의 가례도감의궤는
우선 면수가 총 92면으로 늘었는가 하면 이에 등장하는 행렬 규모 또한 총인원 1천922명에다가
말은 559필이나 된다.
조선은 후기로 갈수록 국력이 약해졌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에 따른다면 국력에 반비례해 왕실 결혼식은
더욱 규모가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철종의 결혼식 의궤 중 42면은 왕의 가마행렬, 84면은 왕비의 가마행렬이다.
초기 왕실 결혼식 의궤에서는 왕비 행렬만 있다가 영조시대 이후에는 왕까지 등장하게 된다.
한데 철종의 결혼식 의궤를 보면 가마꾼들이 텅빈 의자만을 안치한 채 사방이 뚫린
어가를 메고 가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왕비의 어가는 사면을 가렸으므로 왕비 모습을
그리려 해도 그릴 수 없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왜 왕을 그리지 않았을까?
왕은 존엄한 존재이므로 그 모습을 그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까닭이다. 이런 전통은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왕은 지엄한 존재이므로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이런 생각은 실상 서양과 가장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대목이다. 서양이나 근동에서는 이미 수천년 전에 최고권력자 초상을 새긴 동전을
주조하거나 그 동상을 세우는 '공개'의 방식을 채택했다.
가례도감을 비롯한 의궤류에 대한 미술사적 가치를 가장 일찍 주목한 연구자 중 한 명이
이성미(李成美)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다. 2006년 정년퇴직이 오히려 이 노(老) 연구자의
학구열을 더욱 자극했는지, 그간 발표한 글들을 새롭게 다듬어 '가례도감의궤와 미술사'(소와당 펴냄)
이라는 단행본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풍부한 원색 도판을 수록한 이 저서 간행에서 그치지 않고 왕의 초상화를 그린 과정을
정리한 '어진 관련 의궤와 미술사', 왕실 잔치를 기록한 '진연ㆍ찬연의궤와 미술사'와 같은 후속
단행본도 계속 내놓을 작정이라고 예고한다.
이번 책에서 저자 스스로가 고백하듯이 이 교수의 의궤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그가 오랫동안
봉직한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서 비롯됐다. 장서각은 규장각과 함께
의궤류 소장품이 가장 많은 곳이다.
나아가 이번 저서 말미에는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움직임을 둘러싼 일화와
경험담 등도 수록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둘러싼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저자가 주미대사와 외무장관을
역임한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의 아내로서 외교 일선에 깊이 관여한 전력과 대비할 때 주목할 만하다.
이 교수는 저명한 한국고대사학자인 고 이홍직 박사의 딸이며, 서울대 동양사학과 이성규 교수의
누나이기도 하다.
454쪽. 3만5천원.